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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료마

제2차 쵸슈정토, 대정봉환 (일본 근대사) 오늘은 제2차 쵸슈정토와 대정봉환에 대해 알아봅니다. 영국이 사츠마와 쵸슈를 지원하자, 막부를 지원하던 프랑스는 막부에 대해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고, 결국 막부는 제2차 쵸슈정토를 벌이기로 결심했다. 이미 삿쵸동맹을 맺은 사츠마는 쵸슈 정벌에 병사를 내지 않았고, 이에 수적으로 열세였던 쵸슈도 지지 않고 먼저 막부군에 공격을 가하자 이들의 기세에 기가 눌린 막부군은 병사를 물려 도주했다. 이와 더불어 쵸슈정벌로 인해 쌀값이 폭등하자 서민들이 막부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여 봉기를 일으켰고, 14대 쇼군 이에모치가 갑자기 급사하는 바람에 막부는 더이상 전쟁을 이어갈 수 없어 결국 막부의 제2차 쵸슈정토는 실패로 돌아갔다. 일찍부터 싸움을 싫어하던 사카모토 료마는 전쟁없이 막부를 물리칠 방법으로 대정봉환을 주장.. 더보기
삿쵸동맹의 성립 (일본 근대사) 오늘은 이전 실패로 돌아갔던 삿쵸동맹이 다시 성립되는 과정을 알아봅니다. 이미 신용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해서 동맹을 포기하려는 사이고에게 사죄의 뜻으로 군함과 무기를 제공한다면 쵸슈도 받아들일 것이라고 사카모토는 제안했다. 당시 교역을 제한 당했던 쵸슈는 돈이 있어도 무기를 구할 방법이 없었고, 이에 사츠마의 명의로 무기를 사들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었다. 사카모토가 결성한 탈번무사들의 모임 카메야마 샤츄가 이 교역을 중개했고 쵸슈에서 이노우에 카오루와 이토 히로부미가 이 교역을 위해 이름을 바꿔 나가사키로 파견되었다. 군함과 무기를 선정하는 이노우에 카오루와 이토 히로부미(후에 메이지 유신의 유력 세력이 되는 두 사람) 그리고 1866년 1월 교토에서 마침내 사카모토 료마를 중개인으로 세운 사츠마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