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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U

제2차 쵸슈정토, 대정봉환 (일본 근대사)

오늘은 제2차 쵸슈정토와 대정봉환에 대해 알아봅니다.

 

1866년 6월 7일 스오오시마

 

영국이 사츠마와 쵸슈를 지원하자, 막부를 지원하던 프랑스는 막부에 대해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고, 결국 막부는 제2차 쵸슈정토를 벌이기로 결심했다.

 

이미 삿쵸동맹을 맺은 사츠마는 쵸슈 정벌에 병사를 내지 않았고, 이에 수적으로 열세였던 쵸슈도 지지 않고 먼저 막부군에 공격을 가하자 이들의 기세에 기가 눌린 막부군은 병사를 물려 도주했다.

 

 이와 더불어 쵸슈정벌로 인해 쌀값이 폭등하자 서민들이 막부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여 봉기를 일으켰고,

14대 쇼군 이에모치가 갑자기 급사하는 바람에 막부는 더이상 전쟁을 이어갈 수 없어 결국 막부의 제2차 쵸슈정토는 실패로 돌아갔다.

 

일찍부터 싸움을 싫어하던 사카모토 료마는 전쟁없이 막부를 물리칠 방법으로 대정봉환을 주장하였다.

 

대정봉환은 교과서 상으로는 조정의 귀족(公家)인 이와쿠라 토모미가 사이고 등과 꾀해 사츠마와 쵸슈에 토막의 밀칙을 내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사카모토 료마를 미화시키기 위해 많은 공을 그에게 돌립니다만, 실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일단 '사카모토 료마 = 삿쵸동맹' 이것만 알아두면 됩니다. 이후부터는 사카모토 료마의 활약상은 살짝 빼고 흐름만 숙지하는 걸로!

 

1867년 1월 12일 청풍정 (청풍정 회담)

 

사츠마와 쵸슈, 그 외에 토사까지 끌어들이기 위해 사카모토는 고토우 쇼지로와 만나 대정봉환을 위한 건의서를 번주에게 제출할 것을 제안했다. 삿쵸 뿐만 아니라 흐름의 대세에 자신의 출신 번인 토사를 끼워넣기 위해서였다.

왕정복고

여차저차 고난이 많았지만 사카모토 료마의 설득에 토사번주였던 야마우치 토요시게(=요도)는 대정봉환의 권유서를 써주었고 이를 고토우가 막부에 제출하였다.

 

제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

 

1867년 10월 13일 요시노부는 모든 번들과 전쟁을 하면 막부가 멸망할 것이니라는 주변의 말에 할 수 없이 스스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이로써 대정봉환이 이루어졌고 이후 코고쇼 회의를 통해 토사, 사츠마, 쵸슈, 히젠 등의 번들이 모여 왕정복고를 선언한다.

 

그리고 결국 막부의 목표가 된 사카모토 료마는 결국 1967년 자신이 태어난 날에 암살당해 목숨을 잃었다.

 


사실 삿쵸동맹 이후 대정봉환까지 꽤 자잘한 이야기가 많지만 미화된 부분도 많고 실제와 다를  가능성이 있으므로  패스합니다. 교과서만 보고 이해가 안가시는 분들은 드라마를 보시면 확실히 이해가 가실거에요. 다만 사카모토 료마의 친구인 이와사키 야타로(미츠비시 설립)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 캐릭터가 참... 사람 열받게 합니다. 그 부분은 참고 보실 수 있어야 해요. ㅎㅎㅎ 다음에는 그냥 끝내긴 아쉬우니 마지막으로 흐름에 끼워넣기 애매했던 사람들과 사건들을 정리해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