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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근대사

이케다야 사건, 제1차 쵸슈정토, 삿쵸동맹의 발단 (일본 근대사) 오늘은 제1차 쵸슈정토와 삿쵸동맹이 이루어지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뤄봅니다. 1864년 교토 이케다야에서 신센구미에 의한 양이파 참살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양이파는 천황의 탈환 계획을 위해 밀담중이었는데 토사 등의 탈당 사무라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쵸슈의 사무라이들로 이 사건으로 인해 쵸슈는 피해가 컸다. 8월 18일 정변과 이케다야 사건으로 많은 동료를 잃은 쵸슈의 양이파는 천황을 되찾아오기 위해 1864년 교토로 진격, 막부의 편에 선 사츠마와 대립하였다. 이것이 바로 제1차 쵸슈정토(=긴몬의 변)이다. 사츠마와의 교전에서 패한 쵸슈는 막부에 저항할 여력이 없어 결국 번 내의 존왕양이파를 처벌하고 막부의 명령에 따를 것을 약속했다.그럼에도 쵸슈는 모든 번에게 조정의 적으로 취급받으며 수모를 당해야.. 더보기
막부의 양이 실행, 8.18정변 (일본 근대사) 1853년 페리가 내항했을 때 쇼군 후계자를 놓고 히토츠바시파와 남기파가 대립중이었다. 히토츠바시파는 명망이 높은 히토츠바시 요시노부를 지지했고 남기파는 혈육이 쇼군에 가까운 요시토미(=이에모치)를 지지했다. 이전 포스팅에 썼듯이 남기파인 이이 나오스케가 다이로에 취임하며 요시토미를 쇼군 후계자로 정해졌다. 로주 안도 노부마사는 막부의 권위를 회복하고 존왕양이파를 억누르기 위해 공무합체정책을 편다. 코메이 천황의 여동생 카즈노미야를 14대 쇼군 이에모치에게 시집보내려 했다. 존왕양이파는 이에 반대하여 안도를 기습, 이를 사카시타몬가이의 변(1962)이라한다. 사츠마번 등은 공무합체에 동조해 정치적 발언권을 강화하려 했고 그 일례로,1962년 사츠마 번주 시마즈 히사미츠가 막부의 개혁을 요구, 막부는 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