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29일 금요일 |
우린 패키지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오후 12시 반, 리조트 체크아웃을 하고 마지막날의 일정을 즐기고 있었다. 중간에 관광객들 상대로 수입면세품을 파는곳에 들렀는데, 설명해주시는 분이 웃으며 푸켓 공항이 폐쇄되서 비행기가 못뜰지도 모른다는 말을 일본 가이드에게 들었다고 했다. 여전히 웃으며 그래도 "갈 수 있을거예요."라시길래 그때까지만 해도 우린 영문도 모르고 농담이겠거니 웃어넘겼다. 가이드에게 물으니 아직까진 구체적인 상황 파악이 안되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일정만 생각 하란다. 쿠테타네, 시위네.. 공항폐쇄까지 간 마당에 사태가 심각하긴 했지만 관광객인 우리는 실질적으로 그 상황을 느낄 수는 없었다. 시위는 주로 방콕 시내에서 이루어 졌고, 우린 입국 이후, 푸켓 공항 근처도 가보지 않았기에 설마 무슨일이 생기겠어,라는 심정이었다. 한국에 연락을 해보니 아직 뉴스에도 뜨지 않아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아무것도 모른채 코끼리 트랙킹을 즐겼다.
저녁 7시, 마지막 일정인 스파 맛사지를 받으러 갔다. 세시간 동안 노곤히 맛사지를 받고 편한 마음으로 나오니 가이드의 표정이 어두웠다. 아무래도 출국은 포기해야할것 같다며 숙소를 잡아놨으니 이제부터 그곳으로 이동한다 했다. 듣자하니 시위대가 전 공항을 다 점령했다는 것이다. 방콕은 물론이고, 푸켓까지 태국 전체 비행기가 뜨지 못한다 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하루정도 더 있어도 다음날이면 갈 수 있겠거니 하는 마음에 다들 그저 웃으며 "이런 경험 언제 또 해보겠어~"라고 농담까지 주고 받았다. 어짜피 하루 더 있는거 마음 편히 있자 싶었다.
>>> 8월 30일 토요일 |
다음날 아침엔 처음으로 리조트 풀에서 수영을 즐기며 유유히 오전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은 가이드 시간표에 쫓겨다니다보니 리조트에서 수영할 일이 의외로 없었다.
오키드 리조트 풀
오후 1시, 다시 체크아웃을 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태국은 현지식보다 한식이 싸기 때문에 그 이유에서인지 점심은 한식이었다. 예정에도 없이 하루를 더 있게 되었기 때문에 우린 딱히 갈 곳도 없었고 할 것도 없었다. 가이드는 우리를 백화점으로 데려가 약 세시간 정도 자유시간을 주었다. 다들 처음엔 물건도 사고 구경도 하다가 지치고 지쳤는지 헤어진지 한시간도 채 안되서 원래 모이기로 한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시켜놓고 무료한 시간을 때웠다. 우리 뿐 아니라, 우리와 함께 출국예정이었던 많은 관광객들이 거의 같은 스케쥴로 이동하고 있었다.
시간때우기용 백화점 관람
저녁 6시쯔음이 되어봐야 출국이 가능한지 알 수 있다고 했지만 5시쯔음 이미 결론은 내려졌었다. 출국 불가능이었다. 들리는 말에, 방콕은 공항이 워낙 커서 시위대가 점령을 못하고 결국 해산되었다 했다. 어떻게든 방콕으로 가서라도 출국해야하는게 아니냐는 생각을 했지만, 푸켓에서 방콕까지는 비행기로 한시간이지만, 버스로는 장장 12시간이 걸린다 했다. 가이드는 그런 생각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라는 표정이었다. 일단은, 다들 주말내에 한국행이 불가능했기에 직장에 연락을 해야했다. 9월 1일이 이직 후 첫 출근이었던 나는 마음이 더 무거울 수 밖에 없었다. 말로는 월요일쯤에는 출국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시위가 장기화 될 우려가 있었기에 언제 출국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29일 숙박비는 현지 롯데 관광에서 부담을 하고, 그날은 한국 롯데관광 측에서 부담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다음날도 출국을 못할 시에는 우리 각자가 부담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다른 관광사에서는 몇만원씩 돈을 걷었다고도 한다. 저녁을 한식으로 해결하고 숙소로 향하는 길에 한국 롯데관광 측과 통화를 했다. 한국시간으로 아침 8시에 특별기를 보낼테니 푸켓에서 점심까지 해결한 후, 그 특별기를 타고 한국에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 했다. 태국 국민들이 총리에게 자리에서 물러나라며 시작한 시위였다는데 그날 자정을 기해서 총리가 사퇴한다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총리가 사퇴함과 동시에 시위대도 해산하기로 했다고 하니, 특별기를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출국이 딱 우리순서부터 막혔던 터라 당시로써는 출국 1순위였다. 우리는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쫑파티를 하기로 했다. 가이드를 보내놓고 (같이 하려 했지만 일이 있다며 가이드는 퇴장하셨다.) 저녁 8시쯤, 숙소에서 몇미터 떨어진 바에서 맥주 한병씩을 시켜놓고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한두시간이 지나고, 발맛사지까지 받고 숙소로 돌아왔다.
쫑파티 한 Bar 내부
침대위에서 빈둥거리고 있으니 전화벨이 울렸다. 가이드였다. 아무래도 푸켓은 포기해야할것 같다며, 방콕으로 이동할테니 아침 4시 50분에 로비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처음에 방콕으로라도 가서 비행기를 타야하는게 아니냐 할때는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느냐는 얼굴이더니 이제는 그 말도 안되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자 하니 황당할 수 밖에 없었다. 불과 1분전까지만 해도 특별기를 타고 한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했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심기가 불편해짐은 물론이오, 앞이 막막하기만 했다.
>>> 8월 31일 일요일 |
일정내내 모닝콜 소리가 나기도 전에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핸드폰 알람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가이드의 전화에 잠이 깨어 씻지도 못하고 비몽사몽으로 뛰쳐나가 차를 탔다. 한 이십여분을 달려 대절 버스를 타는 곳으로 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출국을 못하기는 다른 여행사 관광객들도 마찬가지였기에 각 여행사들은 뭉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버스들도 막 비닐을 벗긴 새 버스들이었다. 머나먼 길을 각각의 가이드가 따라갈 수 없기에 우리는 버스에 타서 가이드와 작별을 고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냥 특이한 경험했다 치라며 마지막까지 농담을 던졌다. 일단 함께 출발한 차는 모두 네대, 한차에 약 40여명 총 120여명 정도였다. 우리보다 한시간 늦게 출발한 팀도 있으니 한번에 몇백여명이 버스 이동을 한 셈이다. (듣자하니, 모두투어 사람들이 탄 차는 중간에 타이어가 터져 다른 차로 이동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한다.)
우리가 탔던 방콕행 버스들
우리가 탄 차에는 대부분이 일정만 다른 롯데 관광을 통해 온 사람들이었다. 아침조차 먹지 못하고 대절버스로 이동을 시작한 우리는 차가 주유소에 설때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먹을것을 조달해와야했다. 원래 5시 30분에 출발해야했지만 처음있는 일이고, 인원이 많아서 지체된 관계로 약 6시 20분쯤 출발하게 되었다. 11시즈음을 마지막으로 오후 1시까지 쉬지 않고 계속 달렸다. 다들 많이 지쳐었다. 고속버스 휴게소 같은곳에서 내려서 점심을 먹었다. 현지식이었는데 인원이 많다보니 음식도 오래 기다려야했다.
점심, 물론 반찬은 더 나왔다.
그리고는 다시 버스는 도로를 달렸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이제 반쯤 왔겠다 싶었는데, 도착 예정시간이 밤 9시라 한다. 아무래도 점심 저녁 시간 포함하고 중간중간 주유하는 시간을 넣다보니 전체 시간이 애초에 생각했던 12시간에서 15시간으로 늘어나는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동중 사람들이 하나둘 문자를 확인하더니 헛웃음을 지었다. 푸켓공항이 정상운영을 시작했다는 뉴스를 보고 한국에서 지인들이 문자를 보내준것이었다. 이미 되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푸켓 공항이 정상운영을 시작했다는 뉴스를 들으니 뭔가 허탈했다. 그냥 저녁때까지 푸켓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면 바로 출국할 수 있었을텐데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인가 싶었다. 여행사측에서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다시 되돌릴 수도 없었기에 방콕행을 밀고 나갔다.
방콕으로 향하는 길
저녁 8시, 방콕의 한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우리는 출국 1순위였기에 저녁을 서둘러 먹고 다시 버스에 올라타야했다. 하나투어 사람들은 1시 비행기라 시간이 남으니 맛사지를 받고 갈거라고 했다. 물론, 여행사측 부담이었다. 생각을 해보니 장시간의 버스이동으로 몸도 피곤하겠다, 자칫하면 월요일 출근 시간에 겹칠 수도 있었기에 그 사람들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순위가 좋은것만은 아니구나 싶었다. 앞으로 약 40분정도 더 가야 공항에 도착한다고 했다. 그래도 식당에서 보이는 하늘에 비행기가 뜨는 모습이 보이니 안심이 됐다.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한국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9시도 안되어 출발했는데 가도 가도 공항에 도착할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대표로 따라온 가이드의 전화소리를 들어보니, 운전기사가 길을 잘못들어 뱅뱅 돌고 있다고 한다. 항공사측에 우리가 도착할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했다.
티켓팅을 기다리는 행렬
비행기 시간 10시 50분.. 도착한것이 아마도 9시 40분쯔음이었을거다. 서둘러 짐을 들고 공항으로 달리고 티켓팅을 했다. 방콕의 공항은 푸켓과 달리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인 관광객들도 출국을 위해 방콕으로 이동을 했었으니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음은 굳이 말할여지도 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선물을 면세점에서 사려했었으나, 그 어마어마한 면세점을 구경할 시간도 없이 우리는 곧장 비행기 탑승을 서둘러야했다. 리조트에서 마주쳤던, 피피섬에서 마주쳤던 많은 관광객들이 같은 비행기에 올라타 한국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 9월 1일 월요일 |
아침 6시 48분, 인천에 도착. 짐을 찾고 약 7시즈음 해서 버스를 탔다. 출근시간, 그것도 하필 월요일이어서 길까지 막혔다. 덕분에 2시간이 좀 넘게 걸려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장장 27시간여 정도가 걸린 한국행.. 한국에서 푸켓까지 6시간의 비행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원한것도 아니었고, 누구도 생각치 못했던 상황이었지만, 한국으로 오는동안 도움 주신 가이드 분들.. 감사드립니다. 물론, 오는 동안 너무 힘들어서 원망도 했지만.. 이틀의 숙박비, 식사비, 버스 대관료.. 그리고 하루 빨리 출국시켜주시려 방콕행을 단행했다는 점.. 그 부분을 감사히 생각합니다.
p.s 실질적인 여행기는 좀 정신을 차린 뒤, 사진들 정리해서 올릴까 합니다.
'Nanong's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잡담 (0) | 2012.08.03 |
---|---|
루브르 박물관전 초대권이 도착! (0) | 2012.07.12 |
수화수업 (0) | 2012.07.06 |
7월 1일 드디어 독립하다. (0) | 2012.07.06 |
JLPT 시험 성적이 나왔군요. (0) | 2012.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