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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도서] 두근두근 내 인생 - 김애란

 

 

한동안 인터넷 서점 등에서 자주 눈에 띄던 책이었다. 제목을 보고 오해를 한 것인지, 책의 소개 글을 읽고 오해를 한 것인지는 정확치 않지만 나는 이 책이 연애 소설인줄 알았다. 로맨스 소설에는 취미가 없었기 때문에 이 책도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 앱으로 볼만한 책을 검색하다가 이 책이 마침 예약 가능한 상태여서 무심코 예약을 했고, 정말 낯간지러운 연애 소설이라면 반납해버리자는 생각으로 그렇게 우연하게 읽기를 시작했다.


 '이것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다.'

 

이렇게 이 책은 프롤로그에서 이미 내 예상을 깨고 연애 소설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소설에서나 쓰임직한 단어들과 문어체의 문장은 언제나 내가 소설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실감하게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낯설면서 동시에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문장의 흐름, 마무리 짓는 방식들이 매우 익숙했다.  맞춤법을 비롯한 출판되는 책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룰은 지키면서 그 한도 내에서 편하게 이야기를 내뱉으려 노력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알고보니 작가는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동년배였다. 아마도 그 점이 더더욱 이 이야기에 나를 안착시켰는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또래끼리 이야기를 해도 단지 똑같은 시대를 겪어왔다는 이유로 결국 동갑이 제일 궁합이 잘 맞을 때가 있다. 아마도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어린 부모와 늙은 자식, '몇 년 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흘러간다.'라는 소설-영화와는 약간 내용이 다르다-인지 얼추 상상은 갔다. 물론 풀어가는 이야기는 다르다. 아름이는 누구보다 밝고 어른스럽다. 세상에 온갖 착한척은 다 하면서 미안해하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주변에 민폐만 끼치는 그런 캐릭터는 질색이다. 소위 '착하다'로 규정된 주인공 캐릭터는 이렇게 작위적이다. 하지만 아름이는  어린이 교육책에서나 볼 수 있을만한 그런 성품을 지녔지만 여타 영화에서 만들어낸 작위적인 캐릭터의 느낌은 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아름이가 엄살을 부리지 않아서인 것 같다. 캔디처럼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 하면서 힘들때면 언제든 테리우스와 안소니라는 두 명의 기사에게 호위를 받으며 결국 극적으로 행복해진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서, 얼마든지 현실에서 일어날 것 만 같은 투박한 삶이 투영되어 있어서 그랬나보다.

중반부에 영화같은 이야기가 펼쳐져 조금 오그라들기는 하지만 결국 그것도 현실이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읽고 있을때는 '이야기라는게 그럼 그렇지.. 결국은 이렇게 뻔하게 흘러가는거지..'라는 생각을 했으면서도 아픈 현실을 깨닫게 된 순간, 뎅! 하고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면서 배신감에 휩싸였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퍽퍽한 현실이 그대로 반영된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팠다. 욕이 나오고 한탄스러웠으며 원망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름이는 그것도 결국 받아들였다. '나는 자비롭다' 그렇게 신의 미소로 용서를 한 것이 아닌, 매우 현실적인 방법으로.

 해탈

어려서부터 아팠던 탓에 너무 조숙해져버린 아이. 마음의 아픔도 그렇게 날려버렸다. 아름이의 부모인 한대수와 최미라의 사랑이야기도 맘에 들었다. 세상에 다시 없을 것 같이 그려내는 드라마적인 사랑이 아니다. 바로 내 친구가 그랬다고 해도 믿을 만큼 통속적이고 현실적이었다. 나는 그게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수려한 문장과 아름다운 비유도 좋지만, 그런것들에 휘둘려 둘둘 돌려대기만 하는 소설은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특히 작정하고 손에 닿지 않을 그런이야기라면 모를까 서민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면서 작위적으로 쓴 문장이 도대체 어떤 진실을 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려운 문장에 익숙해져있는 사람이라면 또 반대로 이 소설의 문체가 가볍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서민이야기는 서민스럽게 풀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두근 두근 내 인생>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이다.

'책을 읽어야지!'하고 작정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한두페이지 넘겨보자. 난독증이 아닌 이상 자기도 모르는 새에 중반을 달리고 있을 것이며, 다시 정신을 차려보면 뒷표지를 덮고 있을 것이다. 읽어서 손해 볼 것 없다. 아니, 적어도 쓸데없는 인생지침서며,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보다 이런 소설 한 권을 더 읽으라고 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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