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02 내 심장을 쏴라(2009), 정유정 |
'두 남자의 정신병원 탈출기' 라고 했을 때만 해도 별로 감흥이 없었다. 7년의 밤을 그렇게 온 마음으로 읽어 놓고도 그녀의 소설이 재미가 있을 지에 대해서도 반신반의였다. 그도 그럴 것이 7년의 밤보다 2년 더 먼저 나온 책이었다. 책이 두께에 비해 꽤 가벼운 편이라 원래 읽고 있던 책을 놓고 이 책을 들고 외출했다. 일본처럼 문고판 형식으로 작고 가볍게 나올 리가 만무한 한국에서는 이렇게 가볍기라도 하면 그나마 감사한 책에 속했다. 약속 상대를 기다리며 소설의 서두를 읽어 내려갔다. 좀처럼 읽히지 않았지만 나는 시간을 때워야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책 읽는 것이 가장 수월했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30분 늦어진다던 것이 1시간이 되었다. 그 사이 읽던 책은 1p에서 87p가 되어가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오락프로를 보려고 준비를 하다가 이내 금방 관심이 사라졌다. 나의 기나 긴 기다림을 동행해 주었던 그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그 시각이 밤 11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페이지가 100을 넘어가자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가 재밌어지고 읽히는 속도마저 스피드가 붙었다. 오전 4시를 훌쩍 넘어선 그 시각, 나는 겨우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이 소설은 기승전결이 확실하다. 그래서 그에 따라 느끼는 감정의 기복도 높낮이가 있고 읽히는 속도감도 다른 이유이기도 했다. 초반은 좀처럼 잘 와닿지도 않고 빠르게 읽히지도 않는다. 기초 정보를 늘어놓고 있는 통에 캐릭터에 매력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이야기가 중반으로 치달으며 독자의 머릿속은 마치 한 편의 영화가 상영되듯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다만 안젤리나 졸리와 위노나 라이더가 출연했던 '처음 만나는 자유'라는 영화와 너무 비슷하다 랄까? 수명이 위노나 라이더, 승민이 도발적인 안젤리나 졸리다. 디테일은 다르지만 큰 그림은 매우 흡사하다. '처음 만나는 자유'는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던 영화였기 때문에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그 영화에 대한 애착이 함께 묻어나와 더 감정을 이입해서 읽었던 것 같다. 후반으로 갈수록 수명은 더 이상 정신분열증 환자 같지 않았다. (작가의 의도이겠지만) 너무 멀쩡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수리 희망 병원에 (현선엄마와 한이 등 몇몇을 뺀) 사람들이 정말 정신병 환자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전개 부분은 이야기의 톱니바퀴가 딱딱 들어맞는다. 그럴 때는 통쾌하면서도 맥이 빠진다. '허구'라는 사실이 너무 가깝게 느껴져서. 결말 부분도 맥락 상 영화와 비슷하다. 해피엔딩인데 무언가 먹먹하고 아쉬웠다. '그럴 수 밖에 없었을까'하는 개인적인 안타까움도 있었다.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절대로 그들과 같은 행동은 하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에 어느 샌가 수리희망 병원의 나머지 동료 무리에 동화되어 그들을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을 위해서는 떠나보내야 하지만 조금 더 같이 놀고 싶은 그런 마음. 그들과의 헤어짐이 기쁘면서도 아쉽고 섭섭한 그런 마음. 그런 마음을 가늘게 붙잡고 있다가 아침녘이 다 되어서야 끈을 놓고 책을 덮고 안녕을 고할 수 있었다.
나는 연애소설 같은 달달한 소설을 잘 읽지 못한다. 그렇다고 나 글 좀 씁니다하면서 어려운 단어와 문체를 늘어놓는 소위 '문학작품'도 잘 읽지 못한다. 그런 나에게 정유정의 소설은 안성맞춤 이다. 너무 어렵지도 않고, 너무 쉽지도 않다. 초반 100p를 넘기는데 조금 힘이 겹지만 그 이후에는 속도가 붙어 늦어도 3일내에는 다 읽어버린다. 읽을수록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지는 그런 느낌이 좋다. 언제든 책갈피를 끼워 내려놓을 수 있는 책은 결국 한 달이 되어도 잘 읽히지도 않고 기억도, 감동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단숨에 읽어버려야만 하는 책 때문에 종종 밤을 설쳐 다음날 아침 폐해가 막심하지만 그런 재미도 없다면 이 세상 무슨 재미가 있으랴?
다 좋은데 결론만 좀 더 산뜻했으면 좋겠다. 7년의 밤은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내 심장을 쏴라'같은 소설의 경우는 좀 더 가능하지 않겠는가. 더 이상 무얼 바라냐고? 뭐, 그냥 개인적인 바램이다. 산.뜻.한.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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