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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도서] 고령화 가족 - 천명관

 

중독의 특성은 그 주체를 향한 지독한 자기 파괴의 열정에 있다. 그것은 쾌락을 매개로 그 주체의 완전한 죽음을 목표로 한다. 그것은 쾌락을 매개로 그 주체의 완전한 죽음을 목표로 한다. 그의 육체를 모두 갉아먹고 영혼을 완전히 연소시킬 때까지 중독은 멈추지 않는다. - p142

 

인생은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법이다. 지루한 일상과 수많은 시행착오, 어리석은 욕망과 부주의한 선택..... 인생은 단지 구십 분의 플롯을 멋지게 꾸미는 일이 아니라 곳곳에 널려 있는 함정을 피해 평생 동안 도망다녀야 하는 일이리라.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해피엔딩을 꿈꾸면서 말이다. - p45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행복을 얻기 위해서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것은 그저 위선에 가득 찬 역할극에 지나지 않는걸까? 그래서 실은 그것이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에선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허망한 판타지일까? - p141

 

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위험하다. 자존심이 없으면 자신의 이익에 따라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다. 그것은 그가 마음속에 비수같은 분노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존심을 건드리면 안 되는 법이다. - p222

 

헤밍웨이의 전집을 처음 읽기 시작한 이후, 나에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것은 대부분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인생이 늘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무언가에 발목이 잡혀 이리저리 한 세월 이끌려다니기도 하는 게 세상살이일 터인데 때론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 p273

 

<+개인적인 감상>

 

문장 곳곳에서 그의 냉소적인 성격이 드러난다. 주인공의 성격 상 의도한 것이다라고 말해도 아마 일부분의 작가 그의 것임에 틀림없다. 냉소적이 되보지 않은 사람이 문장을 보기만해도 알 수 있는 그런 차가운 문장을 만들어낼 리 없다는 나의 직감. 혹은 동류를 알아보는 나의 텔레파시쯤으로 쳐두자. 아님 말고~

이야기는 결국 나름의 소소한 해피엔드로 끝이 나지만 작가의 본질은 그게 또 아닌 것 같은 미묘한 느낌을 받는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엔드를 장식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말고. 주인공의 어머니가 말한 '이보다 더한 때도 있었다.' 그런 인생보다 더한 나락도 인생에는 존재한다. 물론 내가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어른이 되면서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듣고 보다보면 그렇다. 

 

나는 지금 파산한 것도 아니고 딱히 실패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주인공과 같이 무기력증에 빠져있다. 무엇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기회가 없는 것보다, 실패하는 것보다 더 나쁘고 지독한 무기력증. 혹자는 개인의 무능함을 탓하지만, 설사 그렇다할지라도 그런 현상이 전 세대에 널리 퍼진 것은 시대가 낳은 양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니트(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NEET), 히키꼬모리(引きこもり)라는 말이 일본에서 넘어온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이런 현상은 일본에서 먼저 만연화되었다. 하지만 한신대지진을 겪은 이후로 그들의 젊은이들은 강해졌고, 미래지향적인 마인드를 가지게 되었다. 그에 반해 한국의 젊은이들은 한발짝 늦은 느낌. 여러 가지 현재 정황에 미래를 잃은 우리의 젊은이들은 비관적이고 무기력하다. 주인공처럼 한바탕 얻어터지고 깨달음을 얻기엔 이미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쥐어터지고 있어 그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이 시대의 주인공은 이제 드디어 클라이막스에 올랐는지 모르겠다. 올해가 지나고 나면 우리의 미래가 해피엔드일지 새드엔드일지 결말이 나는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