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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도서] 굿바이 동물원 - 강태식

 


세상이 밉다. 사람들이 밉다. 울분에 찬 가슴을 두 주먹으로 두드린다. 성격 따위 삐뚤어질 테면 삐뚤어져라. 어차피 이 나라에서 가난하게 살면 성격 같은 건 그냥 삐뚤어지는 거니까. 역시 세상이 밉다. 사람들이 밉다. - p153

 

사람이면 어떻고 고릴라면 어떤가. 사람이라고 해서 꼭 행복한 건 아니다. 고릴라가 불행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인권? 존엄성?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그런 게 없다. 다 옛말이다. 있는 놈과 없는 놈이 있을 뿐이다. 빈부의 차가 개인의 가치를 판가름하고 결정짓는다. 상대적 빈곤감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돈 몇 푼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인본주의 대신 물본주의가 물 만난 고기처럼 판을 치고, 황금보기를 돌같이 해야 하는데 사람 보기를 돌같이 하고, 그래서 목숨보다 돈이 중요하고, 그래서 툭 하면 약을 먹거나 밀폐된 자동차 안에서 연탄을 피우거나 건전하지 못한 목적으로 한강에 가고, 아무리 자본주의라지만 정부는 그런 국민을 나 몰라라 방치하고,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게 일한 만큼 버는 건데 이 나라를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고, 민주주의라는 것도 그러고,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씨발, 욕부터 나오고, 있는 놈들은 있는 놈들끼리만 노는데, 결혼도 있는 놈들끼리만 하는데, 민주주의는 개뿔,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니 지랄, 전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들리고, 그래도 먹고살기 위해 계속 몸부림쳐야 하고, 쥐구멍에 해 뜰 날은 영원히 오지 않고, 내일의 태양같은 건 절대 뜨지 않고, 그런 세상인데...... 어쩌면 고릴라가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p284~285


<+개인적인 감상>


주인공이 동물원에 취직하기 전까지 거쳤던 부업라이프에 대한 묘사에 위트가 가득했다. 특히 마늘까기 부업은 슬프지만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나도 어렸을 때 잠깐 엄마의 부업을 돕는답시고 단순노동을 한 적이 있었다. 그게 정확히 무슨 일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반복되는 행위에 손가락이 닳을 것 같았던 느낌만 아련하게 남아있다.

 

고령화 가족이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실패자의 가족에만 빗대어 비유적으로 묘사했다면 이 책은 주인공부터 그가 만나는 주변인물로 확장시켜 그들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내뱉는다. 가끔은 너무 직접적이라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술자리에서 친구의 한탄을 듣고 있는 느낌마저 준다.

 

표지를 굳이 보지 않더라도 동물원이 나올때쯤이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어느정도 예상이 가능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인간이 동물을 연기한다.' 세렝게티 동물원에서 동물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 잘못된 사회가 낳은 피해자였다.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풍자적으로 그려내는 전체적인 이야기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지만, 기발한 소재가 후반부에서 급박하게 유치로 치닫는 마무리는 손가락이 오글어들어 조금 아쉽다. 아무래도 그건 좀 아닌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