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일본이 제정한 '다케시마의 날' 행사 때문에 한국과 일본이 첨예하게 대립했는데요, 우리쪽 뉴스는 많이들 보셨을테니 일본쪽에서 낸 기사를 한번 들여다볼까 합니다.
'선조가 목숨걸어 지킨 '보물섬', 해상보안청 직원이 되고자 하는 증손이 식전에서 맹세'
출처: 산케이 신문 http://sankei.jp.msn.com/economy/news/130222/biz13022211480020-n1.htm
■ "최후의 고기잡이"로부터 58년
전복이나 소라가 풍부한 어장으로 알려진 다케시마(시마네현 오키의 섬마을)로, 오키의 어부 11명이 "최후의 고기잡이"를 한지 어느덧 58년. 22일, 마츠에시에서 제8회 '다케시마의 날' 기념식전이 열렸다. 이 식전에 아버지와 조부, 형님이 다케시마에서 조업을 했다고 하는 야하타 쇼우자씨(84)도 단숨에 달려왔다. "아버지는 다케시마를 '선조가 발견해 준 보물섬'이라고 자랑스러워하셨다. 그 마음을 젊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라고 했다. 또한 이번에는 열 여덟살이 된 쇼우자씨의 손자도 처음으로 식전에 참가하여 '젊은 우리들이 다케시마를 지켜나가고 싶다.'고 맹세했다.
■ 멋대로 그어버린 '이승만 라인'.. 그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은 줄어들고만 있다.
"하루에 수확한 전복이 최고 400키로였다던가.. 어떤 곳인지, 죽기 전에 가보고 싶다. 가능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초등학교 때 조부인 이사부로씨(고인)에게 들은 이야기가 쇼우자씨는 지금도 마음에 강하게 남아있다. 이사부로씨는 1920~1930년대에 9회 정도 다케시마에서 고기잡이를 했다. 쇼우자씨에게 '다다미 2조 정도의 크기인 돌에 전복이 가득했고. 숫자를 세어가며 잡으니 107개였다.'라고 다케시마의 자원이 풍부한 바다의 모습을 들려주었다.
다케시마에 생식하고 있던 강치도 쇼우자씨의 친구였다. 쿠미지역의 해안에서는 동물원 등에 팔기 위해 다케시마에서 생포한 강치 새끼를 기르고 있었는데, 쇼우자씨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자신이 잡은 물고기를 먹이로 주며 놀았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 후, 상황은 돌변했다.1952년, 한국이 일본해에 하나의 선을 그어 다케시마를 자국령이라고 주장했다. 바로 이승만 라인이다.
양국의 대립이 계속되는 동안, 시마네현에서 요청을 받은 쇼우자씨의 아버지, 사이타로씨와 그의 형인 카츠요시씨가 1954년 5월, 라인 제정 후 처음으로 순시선에 보호를 받으며 어부 동료 11인과 다케시마에 시험 조업에 나섰다.
고기잡이를 끝내고 돌아온 카츠요시씨는 '다케시마의 미역은 2미터 정도로 오키의 2배 길이였다. 전복도 2배 정도 더 컸다.'고 이사부로씨의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하지만 다음날 한국은 다케시마에 해안경비대를 파견하여 불법 점거를 강화했다. 그 결과, 이 출항이 마지막으로 기록된 다케시마 고기잡이가 되었다.
사이타로씨는 당시 정부에 다케시마의 영유권 확립을 구하는 진정서를 냈지만, 결과는 함흥차사였다. '다케시마는 무선도 전화도 없는 시대에 선조가 발견하여, 목숨을 걸고 일본의 영토로 만들어주었다. 소중히 하지 않으면 벌을 받을 것이다.'라며 거듭 한탄하던 사이타로씨의 모습이 쇼우자씨의 기억에 깊게 새겨져있다. 하지만 사태는 고착된 채 사이타로씨도 가츠요시씨도 고인이 되어, 최후의 고기잡이에 나간 어부는 전원 돌아올 수 없는 망자가 되었다.
쇼우자씨는 '오키에서도 다케시마의 모습을 직접 보고 들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염려하며, 초등학교에서 다케시마를 테마로 한 수업에 강사로 임하는 등 --의 전승에 힘을 쏟아붓고 있다.
기쁜 일이 일어났다. 해상보안청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손자인 마츠야마 사토시(18)가 '다케시마의 일을 더 알고 싶다.'며 식전출석을 위해 심야버스에 몸을 실어 마츠에를 방문했다. 쇼우자씨는 '듬직해졌다. 일본인이 지켜온 다케시마이므로, 젊은 사람들이 꼭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라고 힘을 주어 강조했다.
영토 분쟁과 관련하여 사실적인 근거보다 인정에 호소하는 듯한 뉘앙스가 짙은 글이네요. 그곳에서 생업으로 종사를 해오신 분들께는 물론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을테고 납득도 가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에는 동감합니다. 다만 글 전체가 '독도는 자원이 풍부하다. 그 독도를 일본인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빼앗겼다. 되돌려받는 것이 정당하다'.라는 점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런 주장이라면 한국 입장에서는 '독도는 자원이 풍부하다. 그런 한국 땅을 일본이 힘으로 차지했다. 우리나라가 겨우 힘이 생겨 빼앗긴 것을 되돌려달라 하니, 우리가 쓰고 있었으니 우리 것이다라고 주장한다.'라고도 얼마든지 주장할 수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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