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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영화] 더 테러 라이브, 강추! - 그분은 과연 사과할 것인가?

라디오로 전화를 걸어온 테러범, 마포대교를 폭발시키고 고립된 다리위에 인질들을 잡은채 대담하게도 그분의 사과를 요구한다. 그분은 과연 스튜디오에 모습을 드러낼까? 초장부터 산통을 깨서 미안하지만 현실세계를 반영해본다면 이미 모두가 그 정답을 알고도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은 이유를 여기에 적어본다.

 

 

예고편만 봤을 땐 그렇고 그런 흔한 블럭버스터인줄 알았다. A급 배우와 쾅쾅 때려주는 폭발씬, 흔한 헐리웃 영화들처럼 주인공과 범인과 실갱이를 벌이다 결국 범인은 잡히고 주인공은 영웅이 된다는 그런 익숙한 이야기말이다. (역시 요즘 영화예고편은 영화의 본질을 흐려놓는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감독은 영화라는 형식을 빌어 현실세계의 부조리함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극적인 해피엔딩 반전이나 꿈같은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이게 우리가 처한 현실이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테러범에게 걸려온 전화, 잘나가던 유명 앵커의 자리에서 쫓겨나 라디오 부스 안에 쳐박힌 윤영화에게는 이 한 통의 전화가 '기회'로 여겨졌다. 특종을 만들어 재기할 기회를 노렸던 윤영화였지만,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과도 같았던 방송국 안에서 그 역시 누군가에게는 뜯어먹히고 마는 약자에 불과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용가치밖에 되지 않는 현실. 바깥에선 폭발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생사를 오가는데 아무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 특종보도만을 생각하는 미디어의 속물근성, 무책임한 경찰대응, 체면치레와 명분만 생각하는 정부. 극중 윤영화의 선배이자 보도부장으로 나왔던 이경영의 대사가 그 사실을 거침없이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그 말들이 현실과 너무 맞아떨어져서 화가날 정도였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시종일관 무거운 이야기만을 쏟아내는 것은 아니다. 전반부의 유머코드를 포함해 전체적으로 보자면 너무 무겁지도, 또 너무 가볍지도 않게 재미와 문제의식을 동시에 담고 있다. 별다른 영화적 장치 없이도 시나리오와 주연배우만으로 이런 연출을 해낸 것을 보면 김병우 감독은 신인급이지만 여타 중견 감독들보다 연출실력은 좋은 것 같다. (예산 몇 십억, 몇 백억을 쏟아붓고 실망만을 안겨준 영화가 어디 한 두편이던가.) 물론 주연배우가 하정우였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탁월한 선택이었고 행운이었지만.

 

 

내가 지금까지 본 하정우의 영화 중 가장 신체적으로는 편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영화 내내 방송국은 커녕 라디오 부스 밖으로도 거의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심적으로는 힘들었을 영화였을 것 같다. 이경영과 전혜진과 같은 조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90% 이상을 하정우 혼자 의자에 앉아서 표현해 내야 했으니 말이다.  실제 오직 표정과 몸짓으로 긴박함과 배신감, 그리고 좌절감, 무력감 그 모든것을 표현해내는 그를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영화의 마지막 씬, 전 부인의 소식을 듣고 내렸을 선택의 여지조차 없었을 결정... 윤영화가 느꼈을 허탈감과 무기력함이 하정우의 클로즈업으로 표현된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관람객을 스크린에 잡아두는 그 시선, 그 표정.. '역시 하정우'란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어떤 캐릭터의 옷을 입혀놔도 어쩜 그렇게 제 옷인양 잘 소화해내는 걸까.

 

그리고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배우, 김소진. 극중 윤영화의 전 부인으로 나온 기자 이수진 역이었다. 처음엔 참 특징없게 생겼구나, 단역인가보다 했는데 후반에 보도할때 보니 목소리가 너무 좋았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듯한 호소력 짙은 그런... 영화 페이지에 출연진란이 너무 빈약해서 엔딩롤때 본 이름만 기억하고 있지만 다음에 또 어디선가 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이런 주제의 영화가 인기를 얻는다는 것은 그만큼 공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크게 대중의 소리라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더 테러 라이브는 그렇다. 영화는 현실의 거울, 테러범 설정이 비현실적이라는 평도 있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충분히 현실적으로 표현되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