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하느라 머리가 바빴다. 이건 왜 이러지? 저건 무슨 의도지? 판타지 요소가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장르의 특성상 이해하고 넘어가도 될만한 것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납득이 안가서 답답한 요소들이 많았다. 원작과도 많이 다르다고 하는데 그 사실과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압축된 요소들이 너무 많았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 것들을 상상해가며 논리적으로 끼워맞추려고 하다보니 영화에 빠져들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의 충돌이 나로 하여금 이 영화를 납득하기 어렵게 만들어놓은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많을 것이고 호불호가 갈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영화가 생각보다 잔인해서 싫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누가 그런것처럼 박찬욱 감독 영화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본다. 비록 박찬욱 감독이 제작자로 참여하긴 했지만, 설국열차는 상황 상 칼에 찔리고 얻어터질 뿐, 그 잔인함의 미학과는 비교할만한 장면이 전혀 없다. 애초에 부각시키고자 하는 장면이 다르니까.
영화를 보러 가기 전 영화에 대한 최대한 많은 사전지식을 함양해서 가길 바란다. 아는 만큼 보이고 영화에 담긴 심오함을 십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프리퀄이나 웹툰 등을 참고하시길.
이 영화의 핵심인물 커티스, 꼬리칸의 실질적 리더이자 불평등한 열차 속 세계를 타개하고자 한다.
열차 각 칸의 문을 열기 위해, 즉 커티스의 목적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인물, 남궁민수.
열차의 보안책임자로 처음엔 일반칸 등 앞쪽에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나 크로놈 중독으로 감옥칸에 딸과 함께 수감중이다.
꼬리칸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내 머리를 터지게 한 원인제공자 중 한 명, 길리엄.
열차의 총리 메이슨, 우스꽝스런 행동과 언변이 하나부터 열까지 복창 터지게 하는 재주를 가진 여자.
본인은 알지 못하지만, 커티스의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 준 소년 에드거.
피가 들끓는 열혈청년이며 커티스를 열차의 새로운 리더로 추앙하고자 하는 인물
남궁민수의 딸로, 열차에서 태어나 길러진 소녀 요나.
투시력을 가진 신통한 인물이지만 그 점 보다는 인류 마지막의 키를 쥐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 이하 내용은 본인 스스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들을 정리해본 것이다. 영화 속 중요 반전 내용 등을 다수 포함하고 있으니 미관람객이라면 그 점 주의하시길 *
[ 내가 생각하는 설국열차 속 악당의 당위성에 대해]
메이슨 총리, 윌포드는 눈에 보이는 영화 속 악당이다. 그들은 충분히 악당으로서의 마땅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메이슨은 윌포드에 붙어 권력을 잡고 편하게 살겠다는 목적, 윌포드는 마치 창조주가 된 것 마냥 열차 속 세상을 자신의 논리로 지배하고자 하는 목적을 각각 지니고 있다.
반면 이들의 목적을 위해 드러나지 않는 곳에 숨어있는 악당들도 있다. 양복차림의 뚱뚱한 백인, 캐릭터 이름조차 없어 마땅히 부를 이름조차 없는 그는 본인의 스토리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등장하여 중요한 씬들을 차지한다. 길리엄을 처단하면서부터 엔진칸까지 얻어터지고 칼을 맞아도 기계처럼 일어나 커티스 일당을 쫓는다. 킬러가 그러는 이유를 도저히 찾지 못하겠다. 그 정도의 비중을 차지할 인물이라면 적어도 왜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커티스를 쫓지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대사도 없는데 시종일관 무표정인지라 그 캐릭터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도저히 읽어낼 수가 없었다. 다른 누구 하나 그 캐릭터에 대해 언급하지도 않는다. 킬러는 다만 쫓아올 뿐이고 커티스는 저지할 뿐이다. 영화의 구조상 커티스의 전진을 막아설 라이벌이 필요했겠지만 그런 중대한 인물이 아무런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걸 이해할 수 없었다. 앞뒤 생각하지 않고 필요하니까 끼워넣은 인물처럼 보였다. 내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찼다. 윌포드와 메이슨이 그렇듯, 악행에도 그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고 이유가 있기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악당은 그냥 악당이라는 논리는 이 영화에선 맞지 않는 것 같은데 그 논리에서 이 킬러만이 부합하지 않는다. 킬러는 무엇을 위해 행동했는가? 충성? 아군까지 무차별 살인을 봐서는 그런건 절대 아닌 것 같고, 옆집의 심술궃은 아저씨마냥 펑퍼짐한 그 몸매로 싸움광, 살인광이라 하기엔 외모가 말해주는 설득력이 부족했다. 마치 기계처럼 죽일 뿐. 왜 그런 캐릭터가 그 자리에 있어야하는지 그 만큼의 분량을 가지고서도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악당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할 수록 답답해질 뿐이었다.
그리고 영화의 가장 큰 반전의 열쇠를 쥐고 있는 길리엄. 그는 열차속 평화를 위해 윌포드와 내통하며 반란을 이끌어낸 숨어있는 악당, 그러나 또 마땅히 악당이라 부를 수도 없는 이중성을 가진 인물이다. 그가 가진 이중성은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 영화의 딜레마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다. 열차라는 폐쇄된 공간 속, 나날히 증가하는 인구와 반대로 한정된 자원. 인류평화공존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희생이 필요했다. 문제는 길리엄이 그 부분을 납득하고 취한 방법이다. 윌포드는 엔진칸에서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기 때문에 창조주가 된 것마냥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길리엄은 저가 속한 꼬리칸 사람들을 희생시켜 가며 윌포드와 앞 칸 사람들의 평화를 지킨다. 그렇게 해서 그는 무엇을 얻는가?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그 대의는, 평화는 대체 누구를 위한 평화란 것인가? 열차 속 평화를 위해 꼬리칸에서 고난을 자처할 정도라면, 아이를 살리기 위해 제 팔을 잘라 커티스에게 내밀었던 그 정도의 성인(saint)이라면 왜 희생자가 항상 꼬리칸의 사람들이 되어야하는지 생각해보지는 않았던 걸까? 반란뿐만이 아니라 질병 등을 이용해 일반칸 사람들의 수를 조절하는 방법 등도 제시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꼬리칸 사람들만을 희생시켜야 했던 길리엄만의 정당한 이유를 찾지 못해 나에게는 결국 모순된 캐릭터로 남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이해는 가지만 마땅치 않은 결과적 악당 남궁민수. 남궁민수는 커티스처럼 꼬리칸 사람들을 대표해 윌포드를 저지하겠다는 대의 목적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저 혼자 살겠다고 폭탄으로 열차문을 날렸고 폭발음 진동으로 일어난 산사태가 열차를 전복시켜버렸다. 엔진칸 문이 고장나는 바람에 결국 그 자신도 살아남지 못했지만. 결국 그 설원에 살아남은 단 두 명의 생존자 요나와 티미. 백곰이 살아있다는 걸로 바깥세상도 충분히 인류가 살아갈 수 있음을 시사했겠지만, 요나와 티미는 열차에서 태어나 길러진 아이다. 당장 음식은 어떻할거며 대체 무슨 수로 개척해서 살아간다는건가. 남궁민수의 행동에 화가 치밀었다. 나가고 싶었으면 7인의 반란때처럼 그들만 나갔어야했다. 결국 자기만의 논리로 대다수를 희생시킨건 윌리엄이나 남궁민수나 마찬가지. 세상은 어떻든간에 합리적인 방법을 고찰하기보다 폭력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익숙한 것 같다. 그게 서로를 파괴시키는 일이라는게 자명한데도 말이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잘 만들었느니 혹은 쓰레기니, 재밌느니 없느니 하는 말은 하지 않겠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봉준호 감독의 세계관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다만 그럼에도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은 확실히 하고 싶었다. 그것이 나만의 편협된 생각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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