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전엔가 페이스북에서 누군가 올린 CCTV 증거화면과 함께 범인을 찾는다는 내용의 글을 본 적이 있다. 길다란 복도에 여러 집이 병렬로 이어진 곳이었고 여자는 이상한 사람이 따라오는 것 같아 무서웠지만 그가 자신의 옆집에 멈춰서길래 안심하고 자신의 집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남자는 갑자기 여자를 덮쳐 집 안으로 들어가려했지만 다행히 여자는 남자를 밀어내고 문을 잠그는데 성공했다. 그 장면이 CCTV에 그대로 찍혀있었다. 경찰에게 보여줬지만 범인을 검거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찾아도 구체적 범죄행위가 없어 처벌할 수도 없다고 했다. 소름끼치는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비슷한 내용이 영화에도 나온다.
"여자는 치안이 나쁜 항구도시의 어느 허름하기 짝이 없는 도시의 밤길을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통화를 하며 걷는다. 시비를 거는 취객에도 별로 당황하는 기색없이 욕을 퍼붓고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온다.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서 이상한 사람과 마주쳤지만 도망갈 엄두가 나지 않아 쭈뼛쭈뼛 버튼을 누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이상한 사람이 따라오기 시작한다. 여자가 겁을 먹은 채 문 앞에서 서서 눈치를 보자 이상한 사람은 여자의 옆집에 멈춰서 문을 여는 듯 보인다. 그제서야 여자는 안심하고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간다. 몇 개월 후, 주인공은 이 아파트의 관리인으로부터 주인공의 형인 백성현이 실종된 것 같다는 소식을 듣는다. 복잡한 심정으로 그의 집을 방문하게 되지만, 그 일을 계기로 범인의 표적이 되기 시작하는데..."
예고에서는 '누군가가 숨어산다'고 했지만 사실 범인은 결코 숨어 살지 않는다. 단지 정체를 숨기고 있을 뿐, 둥지를 차지하기 위해 사람들을 공격하는 '포식자'였다. 처음 영화의 배경이 되는 항구 도시의 허름한 아파트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워낙 도시 자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많고 치안이 나쁘기도 했지만 철거 예정인 아파트의 경비가 제대로일리 없었다. 범인은 각 집의 구성원들을 체크해 표시해두고 혼자사는 사람을 공략해 그들의 공간을 차지해버렸다. 공간은 물론 그들의 소지품이며 현금, 카드도 마음대로 사용했다. 그리고 마침내 주인공을 따라 서울의 고층 아파트로 활동지역을 넓히기 시작했는데... 겉으로 보기에 보안이 완벽할 것 같은 아파트에서조차도 거침없는 범인을 목격하게 되는, 바로 여기서부터가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진짜 공포의 시작이었다.
범인의 광적인 집착은 역할을 맡은 배우(눈치 빠른 사람은 이미 출연진만 봐도 알 듯)의 연기력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섬뜩할 정도의 공포심을 맛볼 수 있었다. 극장을 나오면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범인이 정말 무서웠다고 언급했을 정도. 하지만 중반까지 완벽했던 이 영화는 후반으로 치달을 수록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범인의 집착이 광기에 휩싸여 무서울 정도여서 그런것도 있지만 바로 주인공의 무모한 용감함 때문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부인에게 경찰에 신고하라는 말은 몇 번 했지만, 상황이 뒷받침 되어도 본인이 신고할 생각은 하지 않으며 마지막까지도 스스로의 힘만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중반부 침입사건에서는 경찰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당연했지만 '살인'이 연루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조차 경찰의 개입을 무시한 행동은 미련하기 그지 없었다. 심지어 나중에 경찰이 나타났어도 감독은 되도록 그들을 집안에 들이려 하지 않았다.
또 한가지, 주인공은 쇠파이프로 다리를 맞아도 걸어다니고, 머리를 맞아도 아주 잠깐 기절했다가 다시 정신이 차리는 일을 수차례 반복한다. 일반인이라면 이전의 다른 피해자들처럼 한두대 맞으면 죽어야하는데도 마치 슈퍼맨처럼 끊임없이 일어선다. 이는 범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친 사람은 불사신이란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힘도 천하장사인데다가 아무리 맞아도 범인은 주인공만큼의 기절조차 하려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욕이 방언처럼 터져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옆에 앉은 여자도, 뒷자리에 앉은 모녀도 모두 다 함께 '아놔, 이제 그만하지!'하고 짜증 퍼레이드다. 스릴러 장르에서 이렇게까지 관객들이 웅성웅성 동요되는 영화는 처음이었다. 막장 드라마를 보듯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내며 참견을 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 나 역시 나도 모르게 한 마디 튀어나왔을 정도였다. (아.. 부끄러워..)
이런 단점들을 이해하고 넘어간다면, 일단 초중반의 긴장 넘치는 연출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웬만한 방학특집 호러영화들보다 백 만 배는 훌륭한 공포였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배우들의 연기는 두말하면 잔소리. 눈에 별로 익지 않은 아역들도 짜증유발자다운 연기를 선보였다. 사실 처음에는 손현주를 위한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역할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범인 역의 배우가 훨씬 돋보이는 영화였다. 본인의 가치에 비해 조금 소홀한 대우를 받는 것 같은데, 이 영화로 재조명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간절히 빌어본다.
[+ 교훈: 영화에서는 무식하게 용감하면 주인공이 되지만, 현실에서는 피해자가 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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