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전에 한 번 다른 카테고리에서 소개했지만, 한국에서는 상영되지 않은 일본 전쟁 책임에 관한 영화다. 전쟁사나 일본사에 관심이 있다면 봐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일반적인 한국인들에게는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영화는 일본이 진주만 전쟁에서 패한 후 GHQ 사령부가 일본에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주인공은 사랑하는 여인으로 인해 일본을 사랑하게 된 보너 펠러스라는 군인으로, 그가 맥아더의 명령으로 천황의 전쟁책임 유무를 조사하고 밝혀내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조사관이 천황의 주변인물을 만나가며 추리소설처럼 밝혀나가는 연출은 독특했지만, 일본 자본이 대량 투입된 이 영화에서 천황의 전쟁책임을 인정할 것이란 예상은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기에.. 결말은 뻔하다. 의도와 결말을 정해 놓고 미국과 일본이 손을 잡고 일본의 전쟁책임을 둥글둥글 보듬어주는 느낌이었다. 물론 중간중간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듯한 대사들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대사들 뒤에는 든든한 방패막을 다시 치듯 자기합리화의 대사도 존재한다.
극중 코노에 후미마로는 조사관인 보너 펠러스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We are both guilty. Yes, we seized territory in China, but did not Great Britain, even Portugal, precede us? Yes, we took Singapore and the Malaya, but we took it from the British. We did not take the Philippines from the Filipinos, but from the Americans, who themselves took it from the Spanish. If it is an international crime to take territory by force, who convicted... the British, French, Dutch, and American leaders? Nobody. And what is different with Japan? Nothing. You see, General, we are simply following your fine example."
우리 모두 죄인입니다. 그래요, 우리가 중국 일부를 점령했습니다. 하지만 영국과 포르투갈이라는 선례가 있지 않았습니까? 싱가폴도 말레이반도도 점령했지만 영국으로부터 뺏은 것이었습니다. 필리핀 사람들로부터 필리핀을 뺏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스페인 것을 빼앗았고 그걸 우리가 또 뺏은 것뿐이죠. 영토의 강제 점령이 국제적인 범죄 행위라면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은 기소라도 당해봤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일본과 다른게 무엇입니까? 없습니다. 장군, 우리는 그저 당신네 선례를 따른 것뿐입니다.
굉장히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 대사는 아마도 일본이 가장 하고 싶은 말이었을거다. 너도 그랬으니 나도 그래도 된다는, 행위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빠져있는 이런 식의 논리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침략행위에만 선례를 따지며 합리화하고 전쟁배상에 대해서는 나몰라라 시치미를 뗀다. 독일이나 중국이 전쟁배상금 때문에 엄청난 부채를 떠 안았던 것에 비하면 일본은 결국 강대국인 미국의 보호 하에 그 어떤 배상금도 물지 않았고, 오히려 전쟁특수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마치 일을 나쁜 일을 벌려놓고 엄마에게 혼나자 옆집 철수도 같이 했는데 왜 나만 혼내냐고 변명하는 어린애가 마침 퇴근하고 들어온 아빠에게 들러붙어 얼렁뚱땅 위기를 모면하고 마는 상황?!
리터와 보너 펠러스의 대화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영화 내내 천황에게는 잘못이 없음을 시사하면서도, 설령 그 죄가 있다할지라도 결과적으로 모든 것은 맥아더의 의도였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렸을 때는 맥아더가 한국을 구한 영웅이라고 배웠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걸 어른이 되서 절실히 깨닫는 중 =_=)
"Justice should be served. 정의는 실현되야 하오."
"Revenge is not the same thing as justice.복수와 정의는 엄연히 다릅니다."
이 대사는 여러므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본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지만, 또한 그들에게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는 정치적 이용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로 한국과 일본의 운명이 갈린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그것을 방패삼아 천황의 책임을 희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천황은 평화주의자로, 전쟁을 막으려 했지만 관료들이 막무가내로 전쟁을 일으킨 것이라고 하면서도 자신들이 저지른 모든 악행을 천황에 대한 헌신으로 정당화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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