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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영화] 라스트 스탠드

개봉한지 일주일도 안되어 상영회수가 급격히 줄어든 불운의 영화, 라스트 스탠드를 보고 왔습니다. CGV 영등포에서는 3월 6일이 마지막 상영이길래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서 밤을 새고 몽롱한 상태의 몸을 이끌고 CGV를 찾았지요. 참고로 5000원 관람권으로 알뜰하게 관람!

제약은 많지만 나름 유용한 CGV 영화 5000원 관람권

 

워낙에 인기도 없고 호응도 없어서 기대를 버리고 간 게 다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재밌게 관람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편집권을 획득하지 못한 김지운 감독의 아쉬움도 이해는 가지만, 그 정도면 잘 해낸거라 박수를 쳐주고 싶었어요. 어짜피 서울 상영은 내렸으니 스포 가득 포스팅을 해봅니다. ㅎㅎ

 

포스터 및 이하 사진 출처: 다음영화

 

재미는 있어요. 안 믿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정말이에요. 제가 원래 총격적이나 격투 등의 액션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점이 이유로 작용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재미는 있었어요. 문제는 아무리 김지운 감독의 역량으로 커버를 해봐도 드러나버리는 식상한 스토리가 이 영화를 뭔가 부족한 영화로 만들어버렸다는거에요. 장화 홍련, 놈놈놈 등 이전의 김지운 감독의 작품들은 이야기의 끝을 알 수가 없거나 스케일이 방대하거나 하는 식으로 관객의 기대감을 끌어당겼는데, 이 영화는 너무 뻔한 시골 촌구석 보안관 영웅 만들기. 사건의 스케일도 작고 결말도 눈에 보이니-심지어 주인공은 다 늙은 아놀드 아저씨! 노장투혼은 눈물겹지만 액션이 기대가 안돼!-아무리 김지운 감독이 만들었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기대감이 떨어지는건 어쩔 수 없겠지요.

 

영화는 시골의 조용한 마을 섬머튼에서 시작합니다. 사건 없는 마을에서 보안관들도 심심해서 죽을 지경인지라 재미로 사격을 한답시고 총을 잡고는 반동에 의해 자기 코뼈나 부러뜨리는 소소한 개그를 선보이지요. 다음에는 라스베가스의 야경을 한번 쭈욱 훑는데요, CSI가 떠오르더군요. 섬머튼 마을과 비교를 하기 위한 용도로 나왔다고 보는데, CSI라니.. 잡념 훠이훠이~ 이 영화의 FBI들은 정말 들러리에 불과합니다. 폼은 있는 대로 다 잡는데 뭐 하나 제대로 하는게 없죠. 다니엘 헤니가 FBI 수장 옆에 떡하니 서있는걸 보고 뭔가 존재감이 있는 역할인가 했는데, 대사도 별로 없어서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그냥 멀끔하게 생긴 단역배우였을 듯.

 

멀끔하게 생긴 단역배우, 헤니군

 

오히려 눈에 들어온건 제이미 알렉산더입니다. 짙은 눈썹의 인상 강한 이 여인을 어디서 봤는데 그게 어디더라.. 하는 생각이 영화 초반을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다녔어요. 중반부에 들어서서 기억이 났는데, 바로 미드 '카일 XY' 였습니다. 카일의 여동생 '제시' 역할이었어요. 무려 4~5년 전이었는데도 변한게 없더군요. 시골 보안관답게 적당히 어설프고 별 볼일 없었지만, 사건이 본격적인 국면에 들어서자 아놀드 아저씨를 따라 강단있게 변하는 캐릭터였네요.

 

가운데 여자 배우가 제이미 알렉산더

 

악역이었던 '가브리엘 코르테즈(극중 이름)'는 영화 속에서 말하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너무 약했어요. 탈주장면에서는 대사가 없어서 그럴 듯 해보였는데 입을 여니 존재감이 사라졌습니다. 중저음으로 카리스마를 내뿜어주길 바랬으나 가벼워 보이는 목소리로 찬물을 확 끼얹어주시더군요. 저 얼굴에 류승룡 아저씨같은 목소리를 기대한 제가 잘못이었을까요.. 흑흑.. 1000마일이 넘는 엄청난 스피드의 ZR1을 모는 운전 실력은 훌륭했지만, 그 차에서 내리니 일반인으로 돌아와버린 우리의 악당... 마지막에 아놀드 아저씨와의 격투씬에서도 냉정하게 저의 기대를 져버립니다. 보통은 악역에게 한참을 당하다가 막판에 우리의 주인공이 한방을 가하는게 순리(?)인데 여기서는 처음부터 그냥 나쁜놈이 맥없이 당해요. 아주 잠깐 오, 악역다운데 싶다가도 다시 당합니다. 아마 3대째 대물림된 보스 두목이라 자만심에 쩔어 레이싱만 하느라 싸움 실력 키울 시간은 없었던 모양이에요. 무엇보다 깡다구니가 없는게 커다란 함정. 아프다고 항복해버리다니.. 그에 반해 아놀드 아저씨는 시골 촌구석의 늙은 보안관이었다가 갑자기 불사신으로 변신합니다. 무슨 할아버지가 유리에 찔려도, 칼에 베이고 무릎을 깊이 찔려도 아무렇지 않은지. 젊은 액션 배우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 캐릭터는 분명 노쇠하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었는데 갑자기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며 변모합니다. 분명 같은 칼로 아놀드 아저씨는 열댓번도 넘게 베이고 무릎을 쑤셨는데 멀쩡히 서 있고 악역은 고작 한번 찔린것 만으로 벌벌벌... 물론 아놀드 아저씨가 섬머튼의 보안관으로 오기 전에 꽤 우수한 요원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악당의 명성이 있는데 이건 좀 아니다 싶었네요. ㅎㅎ 차라리 중간 보스가 더 나았어!!

 

아.. 초라한 모습의 악당이여..

 

스토리는 15세 관람가도 충분할 것 같았지만 18세 관람가가 된 건 아마도 총격 장면이 자극적이어서인 듯.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묘사되어 보여지는데, 사실 이런 부분조차 없었다면 김지운 감독의 역량이 더 제한적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BGM도 뭔가 조금 부족하단 느낌이 들었어요. 화면과 부합해 더욱 시너지 효과를 내주기보다는 영화에 방해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느낌의 음악들이었다랄까요. 인식하지 않으면 음악이 흘렀다는 기분 조차 안들었을 그런. 이런면에서도 김지운 감독님을 받쳐주지 못한 헐리웃 환경이 아쉽습니다.

 

써놓고 보니 온통 부정적인 내용... 이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죠.. 아마 김지운 감독이 아니었다면 훨씬 더 졸작으로 망하고 말았을 것 같긴해요. 김지운 감독을 좋아하시는 분은 나중에라도 보세요. 이 영화가 헐리웃 감독으로서 어떻게 성장해가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초석이 되었을테니까요. 언젠가는 헐리웃에서도 모든 권한을 손에 쥐고 떵떵거리며 영화를 만드실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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