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썸네일형 리스트형 크리스찬 탄압, 만국공법, 오오쿠보 토시미치, 요나오시 잇키, 요코이 쇼난 (일본 근대사) 당시 도쿠가와 막부는 크리스찬을 탄압하는 정책이 이미 1790년부터 우라카미 쿠즈레 사건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것 시기 상 우라카미요방쿠즈레(浦上四番崩れ)로 추측된다. 나가사키 부교의 스파이로 활동하며 돈을 모으던 오모토라는 기생은 처음엔 사카모토 료마의 행적을 보고 하여 방해물로 작용하였으나 크리스찬이라는 것을 그에게 들킨 후 부터 마음을 바꾸게 된다. 오모토 역할에는 아오이 유우가 캐스팅 되었다. 나중에 영국인 살해 사건에 연루된 사카모토를 보호하려다 크리스찬임이 발각되어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다. 결국 사카모토와 상인 오우라의 도움으로 일본을 떠나 영국으로 도망갈 수 있게 된다. 사카모토 료마는 카메야마 샤츄의 배가 키슈번의 배와 충돌한 것에 대해, 잘못이 명백하게 키슈번에 있음에도 .. 더보기 제2차 쵸슈정토, 대정봉환 (일본 근대사) 오늘은 제2차 쵸슈정토와 대정봉환에 대해 알아봅니다. 영국이 사츠마와 쵸슈를 지원하자, 막부를 지원하던 프랑스는 막부에 대해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고, 결국 막부는 제2차 쵸슈정토를 벌이기로 결심했다. 이미 삿쵸동맹을 맺은 사츠마는 쵸슈 정벌에 병사를 내지 않았고, 이에 수적으로 열세였던 쵸슈도 지지 않고 먼저 막부군에 공격을 가하자 이들의 기세에 기가 눌린 막부군은 병사를 물려 도주했다. 이와 더불어 쵸슈정벌로 인해 쌀값이 폭등하자 서민들이 막부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여 봉기를 일으켰고, 14대 쇼군 이에모치가 갑자기 급사하는 바람에 막부는 더이상 전쟁을 이어갈 수 없어 결국 막부의 제2차 쵸슈정토는 실패로 돌아갔다. 일찍부터 싸움을 싫어하던 사카모토 료마는 전쟁없이 막부를 물리칠 방법으로 대정봉환을 주장.. 더보기 그까이꺼 간단 떡꼬치! 문득 매콤 짭짤한 맛이 먹고 싶어 떡꼬치를 만들었습니다. 그냥 떡 튀겨서 양념에 찍어먹어도 되지만 그냥 이날따라 유독 제대로 된 떡꼬치 모양으로 만들고 싶더라구요. 떡볶이 떡을 해동시켜 말랑말랑하게 만든 상태에서 이전에 다이소에서 샀던 산적꼬치를 꽂았습니다. 떡은 괜히 어중간하면 기름맛만 나고 맛 없으니 겉면이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바삭하게 튀겨야 해요. 소스는 간단! 케찹과 고추장을 1:1 비율로 섞고 올리고당 등을 섞고 전자렌지에 1분이면 땡! 저는 야채케찹과 고추장, 매실액을 사용했습니다. 질퍽한 감이 있어 물을 조금 섞었더니 소스에 윤기가 좌르르~ 맨 위에 빨간 것은 방울 토마토에요. 그냥 장식용입니다. ㅋㅋ 더보기 삿쵸동맹의 성립 (일본 근대사) 오늘은 이전 실패로 돌아갔던 삿쵸동맹이 다시 성립되는 과정을 알아봅니다. 이미 신용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해서 동맹을 포기하려는 사이고에게 사죄의 뜻으로 군함과 무기를 제공한다면 쵸슈도 받아들일 것이라고 사카모토는 제안했다. 당시 교역을 제한 당했던 쵸슈는 돈이 있어도 무기를 구할 방법이 없었고, 이에 사츠마의 명의로 무기를 사들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었다. 사카모토가 결성한 탈번무사들의 모임 카메야마 샤츄가 이 교역을 중개했고 쵸슈에서 이노우에 카오루와 이토 히로부미가 이 교역을 위해 이름을 바꿔 나가사키로 파견되었다. 군함과 무기를 선정하는 이노우에 카오루와 이토 히로부미(후에 메이지 유신의 유력 세력이 되는 두 사람) 그리고 1866년 1월 교토에서 마침내 사카모토 료마를 중개인으로 세운 사츠마와.. 더보기 부모님과 숭례문 구경 TV 다큐멘터리로 숭례문 복원 상황을 보기는 했지만 굳이 보러 갈 생각은 안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역시 부모님 세대는 생각이 다른가봅니다. 그래서 어버이날 기념으로 부모님과 숭례문을 보러 갔습니다. 부모님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다보면 은근 속이 타요. 평소에는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지하철 내 엘리베이터를 탐색하고 다녀야하고 부모님을 앉혀야 된다는 생각에 빨리 타서 빈자리를 찾아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다보니 정신적으로는 물론 육체적으로도 피곤해집니다. 운전 못하는 자식은 부모님과 나들이도 참 힘들죠. 에휴. 마침 도착한 시간이 점심시간이라서 근처 직장인들도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그런지 평일인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숭례문에 모여들어 있더군요. 직접 숭례문을 보니 KBS 다큐멘터리에서 본 현판의 수리 .. 더보기 이케다야 사건, 제1차 쵸슈정토, 삿쵸동맹의 발단 (일본 근대사) 오늘은 제1차 쵸슈정토와 삿쵸동맹이 이루어지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뤄봅니다. 1864년 교토 이케다야에서 신센구미에 의한 양이파 참살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양이파는 천황의 탈환 계획을 위해 밀담중이었는데 토사 등의 탈당 사무라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쵸슈의 사무라이들로 이 사건으로 인해 쵸슈는 피해가 컸다. 8월 18일 정변과 이케다야 사건으로 많은 동료를 잃은 쵸슈의 양이파는 천황을 되찾아오기 위해 1864년 교토로 진격, 막부의 편에 선 사츠마와 대립하였다. 이것이 바로 제1차 쵸슈정토(=긴몬의 변)이다. 사츠마와의 교전에서 패한 쵸슈는 막부에 저항할 여력이 없어 결국 번 내의 존왕양이파를 처벌하고 막부의 명령에 따를 것을 약속했다.그럼에도 쵸슈는 모든 번에게 조정의 적으로 취급받으며 수모를 당해야.. 더보기 130512 비밀의 정원?! 더보기 130511 블루베리 아이요떼 더보기 막부의 양이 실행, 8.18정변 (일본 근대사) 1853년 페리가 내항했을 때 쇼군 후계자를 놓고 히토츠바시파와 남기파가 대립중이었다. 히토츠바시파는 명망이 높은 히토츠바시 요시노부를 지지했고 남기파는 혈육이 쇼군에 가까운 요시토미(=이에모치)를 지지했다. 이전 포스팅에 썼듯이 남기파인 이이 나오스케가 다이로에 취임하며 요시토미를 쇼군 후계자로 정해졌다. 로주 안도 노부마사는 막부의 권위를 회복하고 존왕양이파를 억누르기 위해 공무합체정책을 편다. 코메이 천황의 여동생 카즈노미야를 14대 쇼군 이에모치에게 시집보내려 했다. 존왕양이파는 이에 반대하여 안도를 기습, 이를 사카시타몬가이의 변(1962)이라한다. 사츠마번 등은 공무합체에 동조해 정치적 발언권을 강화하려 했고 그 일례로,1962년 사츠마 번주 시마즈 히사미츠가 막부의 개혁을 요구, 막부는 이 .. 더보기 요시다 쇼인, 안세이 대옥, 사쿠라다몬가이의 변, 테라다야 사건 (일본 근대사) 오늘은 흐름에 끼워넣기 애매해서 따로 뺀 인물과 사건을 알아봅니다. 요시다 쇼인은 1854년 페리가 일본에 내항했을 때 흑선에 밀항을 시도했다. 카츠라 코고로(=키도 타카요시)의 스승이었던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는 카츠라와의 인연으로 요시다 쇼인과 대면하게 된다. 이들은 결국 밀항에는 실패, 스스로 부교쇼에 가서 밀항 시도를 알리고 쵸슈로 잡혀갔다. 요시다 쇼인이 세운 쇼카손주쿠는 키도 타카요시, 이토 히로부미 등의 사상가와 지사들을 배출해냈다. 그는 이후 막부를 비난해 하ㅣ모토 사나이와 함께 안세이 대옥 때 사형당했다. 어렸을 때 타고 있던 배가 난파당해 미국에서 10년을 살고 돌아온 토사번 출신의 존 만지로(본명 나카하마 만지로), 이후 토사번이 나가사키에서 교역하는데 통역관으로 일하며 도움을 .. 더보기 이전 1 ··· 14 15 16 17 18 19 20 ··· 41 다음